다저스타디움 3층 기둥들 한켠에는 과거 다저스 레전드 선수들의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동양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노모의 사진이 이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습니다. ©다저네이션
아직까지 국내 정서상 일본 선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선입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일본 선수에 관한 호불호를 논할 때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에는 일부 팬들의 응원을 넘어선 찬양 수준까지 치닫고 있는 이치로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가끔 국내 야구 커뮤니티를 보다보면 이런 분들이 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분들 때문에 일본 선수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호감을 표시하려고 해도 똑같이 매도당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봅니다.
그동안 다저네이션은 일본 선수라고 해서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말씀드리는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특출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 일본 선수들을 접하게 되도 어디까지나 야구 선수로서 대단함을 인정하고 호감을 표시할 뿐, 그 이상의 관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한 선수 만큼은 아직도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토네이도' 노모 히데오입니다. 이미 국내 언론에서도 보도가 되었지만 이곳 시각으로 13일, MLB.COM에서는 2014년 명예의 전당 후보에 처음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열거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노모의 이름도 거론이 되었습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난 노모의 통산 성적은 그리 주목을 받을만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메이저리그 12년 통산 123승 109패 4.24의 방어율은 여타의 명예의전당 멤버들과 견주어 보면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100% 수긍은 못할지라도 한 번쯤 이름 정도는 충분히 거론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단 통산 123승이 모두 선발승입니다. 여기에 16번의 완투와 9번의 완봉승이 더해지는데 하이라이트는 모두가 알다시피 양대리그에서 거둔 두 번의 노히트노런입니다. 동양인으로서는 당연히 최초였고,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로 봐도 통산 5번째에 이름을 올리는 대기록이었습니다. (혹자들은 이 기록 하나만으로도 명예의 전당 후보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자격은 갖춘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일본인 메이저리거로서는 처음으로 홈런을 친 선수이기도 하며, 1995년도 신인시절 올스타전 선발투수 출장과 그해 네셔널리그 신인왕까지 휩쓸었던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기록들 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선구자적인 마인드입니다. 사회인 야구선수로서 출전한 1988년 서울올림픽 은메달 획득에 이은, 긴데스 버팔로스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뛰어난 실력과 함께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노모.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서 일본 프로야구 은퇴까지 불사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데뷔 첫 해 신인왕과 사이영상 투표 4위까지 오르는 등 토네이도 돌풍을 일으켰던 그는 12년 동안 7시즌을 다저스에서 활약했던 선수입니다. 대부분의 영광의 기억들은 다저스 유니폼과 함께 만든 것이었고, 아직도 다저스타디움에서는 그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저스 역사상 16번을 달았던 투수 중에서 가장 좋은 기록을 남긴 선수이기도 합니다.
과묵하지만 성실한 자세와 함께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모습은 지금도 많은 팬들이 그를 잊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 도전을 할 때, 초반 잘 나가던 기세와는 달리 다저스를 떠난 뒤 저니맨으로 전락했을 때도, 그를 향한 회의적인 시선을 불굴의 의지로 멋지게 이겨낸 모습은 모두에게 귀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한동안 여러팀을 전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빗대어 "no more"라고 조롱할 때도, "난 반드시 재기 할 수 있다"라고 하루에도 수백 번씩 다짐했던 일화 역시 결코 그를 쉽게 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도전으로 메이저리그에 토네이도 돌풍을 일으켰던 노모.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수많은 일본 선수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좀 더 넓게 본다면 동양선수에 대한 편견을 깨버리는 시작이었습니다.
솔직히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남을지에 대해서는 저 역시도 회의적으로 바라봅니다. 다만 가볍지 않은 성품과 출중한 실력을 겸비했던 그에대한 추억은 지금도 가슴 속에 가장 멋진 일본인 선수로 남아있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 거론 되더라도 충분히 박수 받을만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던 선수 생활을 뒤로한 채, 이제는 지도자로서 제 2의 야구 인생을 즐기고 있는 노모 히데오. 부디 그의 앞날에 현역 시절 못지않은 열정과 성공이 함께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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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다저네이션 dodgernationkorea@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