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2018

-[MLB리포트] 마크 그레이스를 통해서 본 장성호

















올 시즌도 어김없이 FA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총 8명의 선수들이 FA 권리 행사를 신청했다는 소식입니다. FA 승인 선수는 장성호,김상훈(이상 KIA), 박재홍(SK), 최기문(롯데), 박한이(삼성), 강동우,이범호,김태균(이상 한화)으로서 총 8명이라고 합니다. 이번 FA 시장은 투수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김태균, 이범호 같은 거물급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규모 면에서는 8명으로서 조촐한 수준입니다.

이가운데 눈에 띄는 한 선수가 있습니다. 당초 여러가지 정황상 FA 신청을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던 기아 장성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미 4년전, 한 차례 FA 자격을 취득했던 장성호는 당시 4년간 42억이라는 적지않은 액수에 원 소속팀 기아와 재계약을 했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올해 다시 FA 권리를 취득함으로서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이 4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가운데 FA 신청은 '도전'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정도로 다소 의아해 보입니다. 한 편으로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그의 FA 권리 행사를 보면서 떠오르는 한 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과거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1루수, 마크 그레이스입니다.



 컵스에서만 13년을 뛰며 '미스터 컵스'로 불렸던 마크 그레이스



■정교한 타격과 수비를 갖춘 올스타 1루수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올림픽 막바지 준비로 분주했던 1988년 5월, 바다건너 MLB에서는 만 24살의 젊은 선수가 설레이는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고 있었습니다. 1985년 시카고 컵스의 24라운드 지명의 무명 선수였던 그의 이름은 마크 그레이스. (당시 랜디 존슨, 배리 본즈, 배리 라킨, 존 스몰츠 등의 레전드 선수들이 함께 선발되었던 이 85년 드래프트는 훗날 MLB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3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꿈에 그리던 리글리 필드 타석에 선 그는 5월2일 샌디에고 파드레스를 상대로 데뷔, 5타수 2안타의 활약을 선보이며 컵스 1루로서의 힘찬 출발을 알립니다. 메이저리그 16년 동안 통산 3할(.303) 타율과 함께 올스타 3회, 골드 글러브(1루수) 4회 등 공격과 수비를 모두 갖춘 1루수였던 그는 뛰어난 리더쉽까지 겸비했던 선수였습니다. 

또한 현역 시절 매년 대부분의 기록에서 Top 10안에 드는 성적을 유지했으며 14시즌 연속 100안타, 9시즌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며 야구팬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데뷔 이후 컵스에서만 13년을 뛰면서 누구보다 컵스를 사랑했고, 팀의 상징으로 불렸던 선수였습니다. 'Mr. Cubs'라는 애칭과 함께 언제나 컵스의 1루를 지켰던 그는 영원히 컵스의 선수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역시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컵스에서 데뷔를 했으니 야구 인생도 이곳에서 마무리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소속팀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우승을 일군 주역 중 한명으로 화려한 재조명을 받게되는 마크 그레이스



■야구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한 도전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의 활약도 36살이었던 2000년에 접어 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즌 시작과 함께 성적이 예전같지 않았던 그는 4월 한달을 .260대로 마감하면서 서서히 노쇠화에 대한 의견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5월 중순까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는가 싶었지만, 설상 가상으로 15일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면서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게 됩니다.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온 후에는 여전히 자기 몫을 해주며 꾸준히 수준급 성적을 내고 있었으나 칼자루는 구단에서 쥐고 있었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FA가 되었지만 적지않은 나이와 잔부상에 시달리며 하락세가 보이기 시작한 그에게 들리는 건 은퇴를 종용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시즌 동안 구단과 함께 자신의 거취를 논의했던 그에게 돌아온 반응도 긍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는 "I've always said I want to play here, but the front office has to feel the same..." 멘트와 함께 자신은 컵스에 남고 싶지만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구단 역시 같은 생각이어야만 이곳에 남을 수 있지 않겠냐는 식으로 복잡한 심경을 토로합니다. 

컵스 구단에서도 구단의 상징이었던 그가 다른팀으로 떠나주기를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1999년에 계약 후 마이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차세대 1루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마이너리그 유망주가 바로 지금은 장성호의 팀 메이트인 최희섭입니다.

그레이스가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논의하며 고민하고 있었던 2000년, 최희섭은 시즌 중 마이너리그 싱글 A에서 AA로 올라가며 밝은 미래를 기약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싱글 A 96경기에서 .293의 타율과 15홈런, OPS .902를 찍은 최희섭은 시즌 후반 AA 36경기에서 .303 10홈런, OPS 1.042를 기록하며 컵스 구단을 들뜨게 합니다.

때문에 빠르면 다음 시즌인 2001년도 중반에 최희섭을 메이저리그에 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컵스는 자연스럽게 그레이스와 자리교대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레이스에게는 급기야 은퇴까지 권유하기에 이릅니다. 

그레이스의 데뷔 이후 13년동안 고작 2번(89년,98년)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함께 전년도 NL 중부지구 꼴지에 이은 2000년도 역시 지구 꼴지로 마감한 컵스에게는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습니다. 팀이 어려운 시기에 꾿꾿히 제 역할을 해줬던 제 아무리 그레이스라도 예외가 아니였습니다.
 
풀타임 1루수와 함께 선수생활 연장을 갈구했던 그레이스. 그러나 본인의 의사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구단의 의중을 파악한 그는 더이상 컵스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으로 12월 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와 함께 2년 계약에 합의하게 됩니다. 

한편 컵스는 그레이스가 떠난 빈자리에 2001 시즌 중반 또다른 베테랑인 프레드 맥그리프를 데려왔고, 관심의 초점이었던 최희섭은 2002년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게 됩니다.

1998년 창단해서 이듬 해 곧바로 랜디 존슨을 앞세우며 시즌 100승을 기록, 파란을 일으켰던 디백스는 아쉽게도 포스트시즌에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디비전 시리즈에서 무릎을 꿇고 맙니다. 그리고 2000년 커트 실링의 합류에도 불구하고 역시 지구 3위를 기록하며 신생팀으로서의 한계에 부딛치게 됩니다. 때문에 디백스 입장에서는 뛰어난 수비와 함께 팀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경험도 많은 '베테랑' 그레이스의 합류는 큰 소득이었습니다.

사실 그레이스에게는 선수생활 연장 의지만큼이나 우승에 대한 열망도 컸습니다. 당시 현역선수 중에서는 배리 본즈와 라파엘 팔메이로 다음으로 오랜기간 동안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선수가 바로 그레이스였습니다. 때문에 당시 창단 4년밖에 안된 신생팀이었지만,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였있었던 디백스에서의 선수 생활은 그에게도 마지막이자 거부할 수 없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적 첫해였던 2001년. 그레이스는 대망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당시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이라는 당대 최고의 원투펀치의 활약이 크게 부각되긴 했지만, 그레이스의 역할도 큰 공로로 인정 받았습니다. 클럽 하우스에서의 리더십은 팀을 뭉치게 만든 원동력이었고, 많은 동료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2001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맞고 쓰러져있던 당시 엔트리 최연소 선수 김병현에게 다가가 격려와 함께 끌어안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팀에서 좁아진 입지와 함께 결국 백업 선수나 은퇴 위기까지 몰렸던 마크 그레이스. 새로운 선택에 이은 멋진 반전을 이뤄냈던 그는 디백스에서 3년간의 선수생활을 끝으로 16년간 이어진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게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폭스 스포츠 방송 해설자로서 제 2의 야구인생과 함께 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13년간 몸담았던 친정을 떠난 그레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장성호 역시 14년만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듯 닮아보이는 두 선수
마크 그레이스와 장성호. 리그도 다르고 한 번도 만나 적이 없는 두 선수는 다른 듯 하면서도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비슷한 신체 조건에 둘다 파워보다는 정교함을 앞세웠던 통산 타율 3할이 넘는 1루수라는 점. 그리고 신인 시절부터 프렌차이즈 스타로서 10년 넘게 한 팀에서만 뛰었다는 점까지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최희섭이라는 이름이 추가되는 것도 웃지 못할 닮은점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장성호는 타이거즈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선수입니다. 그와 함께 해태 시절부터 함께하고 있는 선수는 이종범, 이대진, 김종국 정도 밖에 없을 정도로 타이거즈의 살아있는 프렌차이즈 선수 중 한명입니다.

이미 한 차례 FA 자격 취득 후 타이거즈에 남았던 그는 최근 몇 년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예전 20대 전성기 때 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듣기 시작합니다. 정들었던 1루 자리를 떠나 외야 수비를 보는가 하면, 이제는 최희섭과 나지완 등에 밀려 풀타임 포지션도 없이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고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레이스와 마찬가지로 팀이 어려웠던 시절, 가장 전면에 나서서 활약했던 선수였습니다. 최근 3년간 부상도 있었고 팀 내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통산 성적을 보면 그레이스와 같이 정말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레이스가 컵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0년도와 같은 모습으로 오프시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FA 신청을 함으로서 타이거즈를 떠날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올 시즌 고작 88경기에 출전해 .284 7홈런 39타점을 올리는데 그친 베테랑의 FA 신청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들리고 있습니다. 그는 장고 끝에 "FA는 선수로서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으로 신청했다는 소신을 담담히 밝혔습니다. 

물론 장성호는 그레이스와는 다르게 원 소속팀인 타이거즈와 타결을 볼 수 있는 확률을 무시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만년 하위팀에 있었던 그레이스가 이루지 못한 친정팀에서의 우승 영광까지 맛본 장성호입니다.

결국 선택은 장성호 본인의 몫입니다. 용기있게 시장에 나왔지만 다시 쓸쓸하게 호랑이 굴로 되돌아 갈 수도 있습니다. 다른팀에서 그를 데려가려면 최대 24억 7천 5백만원 이라는 적지않은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큰 걸림돌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리 많치않은 나이에 프로 14년차의 경험까지 더해진 그의 존재는 그레이스가 FA 시장에 나왔던 당시보다 더 가치있어 보입니다.

같은 포지션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마크 그레이스가 걸었던 길까지도 비슷하게 걷고있는 장성호의 야구인생. 그레이스가 디백스 유니폼을 입고 선수 생활의 화려한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처럼 과연 '스나이퍼'는 어느 유니폼을 입게 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본 내용은 2009년 11월 3일 다저네이션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된 포스팅입니다.



/로스앤젤레스/©다저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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